석왕사를 들어서는 최초의 문을 말한다. 이 문을 들어설 때는 마음 속의 차별심을 부수고 한마음으로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해야 한다.

  불법을 지키는 선신(善神) 사천왕이 모셔진 곳. 석왕사는 천왕문과 범종루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범종루는 사찰의 종을 달아놓은 곳을 말한다. 사천왕문 위에 있다.

  부처님의 법은 화합을 근본으로 삼는데, 부처님께서는 교단의 화합을 위하고 대중이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세를 일깨우고자 여섯 가지 화합하는 법을 말씀하셨다.
첫째는 신화동주(身和同住)로 몸의 화합으로 함께 살며 한몸같이 일하는 자세, 둘째는 구화무쟁(口和無諍)으로 입의 화합으로 다툼없이 지내는 자세, 셋째는 의화무위(意和無違)로 뜻의 화합으로 어기는 일이 없이 한마음으로 수행하는 자세이다. 넷째는 계화동준(戒和同遵)으로 계율의 화합으로 함께 지켜 참되이 수행하는 자세이며, 다섯째는 견화동해(見和同解)로 견해의 화합으로 함께 이해하는 자세이고, 여섯째는 이화동균(利和同均)으로 이익의 화합으로 고르게 분배하여 평등심을 갖고 남을 항상 존중하는 자세이다.
이상의 여섯 가지 발원으로 세워진 법당이 육화전인데, 육화전의 건축의의는 육화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건물이 홀수칸으로 지어지는 것과는 달리 여섯 칸으로 지어져 있다.
석왕사의 창사정신의 가장 밑바탕에 깔린 대전제가 바로 어떤 식으로든 파벌과 갈림을 거부하고 대화합을 이루려는 것이라고 할 때, 석왕사 내에서 육화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제 육화전에 드나드는 신도들은 지장보살님. 석가모니부처님, 관세음보살님께 나와 나의 가족의 개인적인 기복만을 비는 이기적 자세에서 벗어나서 이웃과 민족과 인류애로 확대되는 애타의 자세, 육화합의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신앙의 태도를 지녀야겠다.

  한 가족이 한 부처님 모시기 전개에 따라 팔만사천불을 조성하여 육화전에 모셔져 있다.

  2003년 조성되었다.
저승세계를 상징하는 전각이다.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하여 시왕을 봉안하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이곳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봉안하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冥府十王像)을, 시왕상 옆에는 동자상(童子像)을 안치하였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즉 부처님이 없는 시대에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로서, 특히 가장 고통이 심한 지옥의 중생 제도가 지장보살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왕은 저승에 있는 열 명의 심판관이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1, 3, 5, 7, 9의 홀수 대왕이, 오른쪽에는 2, 4, 6, 8, 10의 짝수대왕이 배치된다.
불교의 내세관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고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다음 생의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49일 동안 7일마다 사십구재를 지내는 것이다.
이 재를 지낸 뒤에도 죽은 지 100일, 1주년과 2주년에 지내는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이 있어 재는 모두 열 번을 치르게 된다. 이 열번의 근거는 사람이 죽으면 명부의 시왕 각각에게 심판을 받게 되는데, 심판을 받을 때마다 재(齋)를 올린다는 명부시왕신앙에 의거한 것이다.

제 1 진광대왕(秦廣大王)
사람이 죽은지 초칠일 (初七日, 7일)이 되면 진광대왕 앞에서 처음으로 죄업을 심판받는다.
여기에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왕청의 모습과 그가 다스리는 지옥 장면이 묘사된다. 무섭게 생긴 옥졸이 죽은 사람을 관(棺)에서 꺼내는 장면과 죄인들을 밧줄에 묶여 끌려 가는 장면이 묘사되며, 손이 묶인 채 칼을 쓰고 모여 있는 죄인들 위로 지장보살이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 2 초강대왕(初江大王)
초강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2·7일 (14일) 째 되는 날에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여기에는 기둥에 죄인을 묶어 놓고 죄인의 배꼽에서 창자를 끄집어내는 장면과 목에 칼을 쓴 죄인 앞에서 판관이 죄과가 적힌 두루마리를 펼쳐 읽는 장면이 그려진다.
그 옆에는 죄인을 구제하기 위해 지장보살과 동자가 합장하고 서 있다.

제 3 송제대왕(宋帝大王)
송제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3·7일 (21일) 째 되는 날 죄업을 심판하는 왕이다.
여기에는 죄인을 기둥에 묶고 혀를 빼내어 그 위에서 옥졸이 소를 몰아 쟁기질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살아서 말에 자애로움이 없고 남을 비방하고 욕하며, 나쁜 말로 사람을 현혹시킨 사람들이 받는 형벌이다.

제 4 오관대왕(五官大王)
오관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4·7일 (28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여기에는 파계(破戒)하거나 살생하여 죽여 고기를 먹은 사람이 주로 떨어진다는 화탕지옥, 즉 펄펄 끓는 물에 죄인을 집어넣고 삶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역시 한켠에는 죄인을 구제하기 위해 지장보살과 동자가 합장하고 서 있다.

제 5 염라대왕(閻羅大王)
염라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5·7일 (35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염라대왕청에는 업경(業鏡)이 있어 죄인들의 생전의 죄를 비추어 그에 따라 벌을 준다. 여기에는 옥졸이 죄인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채 업경대(業鏡臺)를 들여다보는 장면과 방아로 죄인을 찧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보통 업경대 안에는 몽둥이로 소를 때려 죽이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이는 생전에 가축을 도살한 사람의 죄가 업경에 나타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제 6 변성대왕(變成大王)
변성대왕은 사람이 죽은지 6·7일 (42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여기에는 날카로운 칼 숲에 갇혀 있는 죄인들과 죄인들의 머리와 다리를 잡아 칼 숲으로 집어던지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주로 생전에 칼이나 몽둥이로 남을 괴롭힌 자가 받게되는 형벌이다
그 옆에는 옥졸이 창으로 죄인을 찌르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제 7 태산대왕(泰山大王)
태산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7·7일 (49일) 째 심판을 맡은 왕이다.
왕 앞에는 지옥·아귀·수라·인·천의 육도(六道)가 있어서 죄인을 그 죄업에 따라 태어날 곳과 지옥에 보내는 일이 정해진다. 이로 인해 불교에서는 망자(亡者)를 위한 49재가 행해진다
여기에는 형틀에 죄인을 묶어 놓고, 양쪽에 톱을 든 옥졸이 마주서서 죄인을 반으로 써는 장면이 묘사되어있다.

제 8 평등대왕(平等大王)
평등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100일 째 되는 날 심판을 맡은 왕으로 공평하게 죄복(罪福)의 업을 다스린다는 뜻에서 평등왕(平等王) 또는 평정왕(平正王)이라 한다.
여기에는 철산(鐵山) 사이에 죄인을 끼워 놓고 압사시키는 장면과 빠져나가려는 죄인을 옥졸이 저지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우측에는 죄인을 구제하려는 지장보살이 합장하고 서있다.

제 9 도시대왕(都市大王)
도시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1주기 째 되는 날에 죄업을 심판하는 왕으로 도제왕(都帝王), 도조왕(都弔王)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업칭(業秤)이라는 저울로 죄의 무겁고 가벼움을 다는 장면과 옷을 벗은 죄인들이 차가운 얼음산에 같혀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 10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
오도전륜대왕은 시왕의 마지막 왕으로 사람이 죽은 지 3회기(三回忌) 째 되는 날 심판을 마무리하는 왕이다.
여러 단계를 거치며 죄를 심판받은 죄인들은 마지막으로 이 왕 앞에서 다시 태어날 곳이 결정 된다.
여기에는 법륜(法輪) 위에 앉아 있는 머리가 둘 달린 옥졸의 머리 위로 육도윤회(六道輪廻) 장면이 펼쳐져 있고, 그 주위에 재판이 끝난 후 육도윤회의 길을 떠나기 위해 모인 죄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석왕사 전통사찰 지정기념 나한전 불사 및 오백나한 조성불사-

나한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은 성자를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불성이 있기 때문에 ‘부처’ ‘보살’ ‘나한’ 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각자(覺者)라는 점에서는 같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누구든지 일심으로 공부해서 나한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나한 역시 여러 불보살처럼 신통력을 갖춘 존재로 받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보살과 다른 점은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나한들은 대개 실존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靈鷲山) 법회(法會)에서 나한들에게 부촉하기를 열반에 들어 열반락(涅槃樂)을 즐기지 말고 선정(禪定)에 들어 있으면서도 천상이나 인간들의 공양에 응하여 복을 짓는 밭이 되어달라고 하셨다.
나한은 부처님의 부촉을 받아 중생을 제도하시는 스승으로 널리 중생의 원을 쫓아 그 뜻을 이루게 해 주시는 성자이시다.
나한은 온 세계를 가득 채워서 밝게 비추듯이 중생의 마음 속에 고루 담길 수 있는 정성 가득한 소원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그 모습 밝게 비추어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 깨우쳐 원만한 지혜덕상을 갖추어 열반의 언덕을 이르게 해 주시는 분이다.
일심으로 제 마음에 새기어 입으로는 「십육성중(十六聖衆)」이나 「제대성중(諸大聖衆)」의 명호를 일념으로 칭념하게 되면, 기도의 정성에 성현이 감응하시어 반드시 어떤 불가사의한 모습을 현전(現前)이나 꿈속에 나투어 소원을 이루게 한다.
석왕사 전통사찰 지정기념으로 나한전 및 오백나한 조성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수자(水子)라는 말의 뜻은 출산 직후의 아기, 혹은 태아라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한 인간이 수태되어 출산까지를 ‘태내 5위’라 하여 수정 그 자체로부터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불교는 낙태를 생명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에, 낙태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삶을 빼앗는 살생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또한 유산이나 낙태를 최악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수자공양이 존재하는 것이고, 수자공양은 곧 생명의 존엄성과 외경심을 동시에 지니는 합리적인 의식인 것이다.
석왕사에서는 지장보살을 모셔 수자영가의 안착을 위해 공양을 올려, 많은 관심과 참여로 깊은 참회와 망령을 위한 천도와 더불어 생명존중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회를 가지고자 수자지장을 조성하고 있다.

  보운산 중턱에서 부천 시내를 굽어보시며 우리를 맞이하는 불상이 있으니 바로 삼존불과 여섯 보살상이다. 총 조성 기간이 5년이 소요되었고, 좌대를 포함하여 높이가 13자나 되는 국내 최대의 노천불상으로서, 삼존불은 불기2533년 11월 11일 봉안하였고, 여섯 보살상은 불기2534년 11월 1일 지장경 산림 대법회 회향일을 기해 점안하였다. 우리가 부처님을 바라보았을 때, 가운데에 계신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시고, 왼쪽이 아미타 부처님, 오른쪽이 약사여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불교를 창시한 교주이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상이 가장 많이 만들어지고 가장 숭앙받았다.

아미타 부처님은 영원한 수명(無量壽)과 무한한 광명(無量光)을 보장해 주는 즉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영원한 부처님이라는 뜻인데, 서방정토를 주재하면서 뭇중생들에게 안락과 수명을 보장해 주는 대자대비한 부처님이다.
약사여래는 사람들의 온갖 아픔을 고쳐주시고 오래 살도록 해주며, 재난과 근심을 없애주시고 옷과 음식을 많이 주시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부처님이다. 그리고 다른 불상과는 달리 손에 약이 든 약그릇을 들고 있다.
육보살상은 우리가 바라보았을 때 왼쪽으로부터 대세지, 관음, 보현, 문수, 일광, 지장보살 순으로 있다. 대세지 보살님은 지혜의 밝은 빛이 이 모든 중생에게 두루 비치어 위없는 힘을 얻게 해주는 분이시다. 자세히 보면 머리의 보관에 보배병 문양이 들어 있다.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비추어 지옥, 아귀, 축생의 3악도를 여의게 하고 무한한 힘을 주므로 대세지라 하는 것이다. 관음보살님은 중생의 모든 괴로워하는 소리를 듣고 그 괴로움을 없애준다는 뜻에서 관세음이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손에는 감로수의 정병을 지니시고, 머리의 보관 중에는 아미타 부처님의 화신 즉 화불(化佛)을 나타내고 있다. 보현보살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덕(理德), 정덕(定德), 행덕(行德)을 맡고 있는 보살님으로 유명하다. 이 3덕 가운데 으뜸은 행덕이다. 손에는 연꽃을 쥐고 있다. 문수보살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지덕(智德)과 체덕(體德)을 맡으시는 보살이시다. 보현보살님이 대행(大行)의 상징이라면 문수보살님은 대지(大智)의 상징이다. 손에는 서지(書誌)를 들고 있다. 일광보살님은 월광보살님과 함께 약사여래불을 협시하는 보살이다. 손에는 태양을 들고 있다.
특히 지옥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을 인도하여 지장보살님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6도윤회에 끝없이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해주고, 극락세계로 이끌어주는 보살이시다. 또한 중생제도를 위해 영원히 보살로 남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지옥문전에서 대비(大悲)의 눈물로써 교화하시기도 한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보배구슬과 석장을 짚고 있다. 이처럼 중생구제에 힘쓰시는 부처님과 보살님들께 우리 불자님들은 절에 오실 때마다 꼭 들르셔서 예를 올려야 하겠습니다.


  철따라 눈비 맞으며 고요히 부처님의 최초 설법에 귀 기울이는 다섯제자의 모습이 있으니, 석왕사 육화전 너머에 있는 초전법륜상이 그것이다. 사철나무와 푸른 잔디가 싱그러운 초전법륜상에 오르면, 고요와 정적 속에서 마치 부처님의 심오한 진리의 법음이 들려오는 듯하다. 눈을 감고서 지그시 미소하며, 혹은 합장을 가하거나 몸을 깊이 구부리고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꼭 체득하고야 말겠다는 인고의 흔적마져 보이는 것 같다. 부처님께서 정각 직후 7일 동안 보리수와 그 둘레에 머물면서 연기의 법을 명상한다. 최고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은 이제 더 추구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깨달아 얻은 최고의 진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했을 때, 그들이 과연 알아듣고 해탈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 문제였다. 부처님은 범천(Brahma)의 권청을 받아들여 설법을 결의하였다. 녹야원에서의 최초의 설법-이른바 초전법륜-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가 않았다. 누구에게 이 법을 설할까. 부처님은 출가후 처음 찾아갔던 두 스승을 생각했다. 그들은 이 법을 이해할 수 있으련만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면 누가 이법을 이해할 수 있는가. 진리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법을 듣는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주관적 편견이 문제였다. 많은 생각 끝에 부처님은 예전에 함께 고행을 했던 다섯 수행자를 생각했다. 그들은 마가다에서 함께 수행했던 동료였으나, 고타마 사문이 고행을 포기한 일을 가지고 그를 경멸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250키로나 되는 녹야원으로 그들을 찾아 나섰다. 이는 부처님께서 첫 설법에 대해서 얼마나 필사적이었는가를 느끼게 한다. 부처님은 그들을 상대로 첫 가르침을 설하였다.

초전법륜은 두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제1부는 중도(中道)의 설법으로 쾌락주의와 고행주의 이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에 의해 통찰과 인식과 깨달음의 열반에 이른다. 이 중도는 팔정도(八正道)로서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즉 불교의 중도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철저히 비판 배격하고, 한걸음 나아가 독자적인 원리를 제시한 것이다.초전법륜의 제2부는 사성제로서 이는 태자의 출가수행의 동기가 된 인간고와 그 해결을 4단게로 고찰한 것으로, 고뇌를 극복하는 방법도 앞서의 태자의 출가수행의 동기가 된 인간고와 그 해결을 4단계로 고찰한 중도로서 제시한 팔정도와 같은 것이다. 45년에 걸친 부처님의 종교활동은 이곳을 기점으로 시작하며 이후의 모든 불교의 발전은 이 초전법륜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석왕사에서는 부처님의 최초의 설법, 즉 초전법륜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높이 숭앙하고 초전법륜의 현장을 감동적으로 재현키 위해 불기2528년(1984년) 4월 15일에 '부처님과 5비구'상을 조성, 봉안한 것이다.


  이 석탑에는 스리랑카 라만냐종 원로회의 의장 바데가마 위말라완샤 스님께서 모시고 온 진신사리 3과와 1991년 5월 정통 정법 계승을 위한 사경대법회에서 금자, 은자, 먹자로 사경한 금강반야바라밀경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2005년 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