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왕사 누리집을 새로이 구축하면서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 1976년 고산 대선사의 원력으로 석왕사를 중창하던 시절을 지금과 비교해보면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발전을 이루고, 그에 따라 세상이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상이 발전하고 지구의 각 나라가 디지털 문명으로 하나가 되고, 많은 것들이 예전에 비해 풍요로워졌다고 하지만 각 나라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반목하는 모습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기본자세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발달한 문명에 힘입어 타인을 해하는 방법은 더 다양해지고 잔인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경전 속에서 이 세상을 일컬어 이야기하는 안수정등(岸樹井藤)의 비유가 있습니다. 절벽 위의 나무와 우물의 등나무 넝쿨이란 뜻으로 불설 비유경에 나오는 설화입니다.
사나운 불길이 타오르는 광막한 들판에서 한 나그네가 사나운 코끼리와 불길로부터 도망쳐 넝쿨을 잡고 우물 안으로 내려갔지만 우물 속에는 커다란 구렁이 세 마리가 입을 벌리고 나그네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위를 올려다보니 위에는 독사 네 마리가 혀를 낼름거리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어서 나그네는 더 이상 내려갈 수도 올라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나그네의 팔 힘은 점점 빠지고 설상가상으로 흰 쥐와 검은 쥐가 넝쿨의 윗부분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디선가 액체 한방울이 입가에 떨어져 내렸죠. 달콤한 꿀물이었습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꿀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지친 나그네는 그 꿀물을 받아먹고, 나그네는 달콤한 꿀맛에 공포도 두려움도 자신이 위태롭다는 사실도 잊어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인간의 삶을 비유한 것입니다. 사나운 불길은 욕망을,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코끼리는 죽음과 무상을 뜻합니다. 넝쿨은 인간의 수명을, 두 마리의 쥐는 낮과 밤, 시간을 뜻하며 쥐가 넝쿨을 갉아 먹는 것은 점점 줄어드는 인간의 목숨을 가리킵니다. 구렁이 세 마리는 탐진치 삼독을, 독사 네 마리는 지수화풍 사대를, 꿀은 오욕락(五欲樂)을 가리킵니다. 안수정등(岸樹井藤)은 쥐가 넝쿨을 갉아먹듯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달콤한 꿀맛에 빠져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모습과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는 서로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바른 마음으로 바른 자세로 세상을 대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렇게 혼란한 세상 속에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바른 길을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바른 길을 알았으면 그 바른 길을 가야함을, 그러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해야 함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 속에서 함께 하며 서로 북돋워주며 함께 나아가야 하는 모습이 불자들이 가야할 길입니다.
석왕사가 표방하는 바른불교 실천불교를 통해 개인의 삶과, 더 나아가 사회가 바로 서는 역할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석왕사 새누리집을 새롭게 선보이는 지점에서 나는 삶의 어느 자리에 서있는가, 그 자리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되돌아보며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한발 한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영담 / 석왕사 주지